혜화동 대학로에서 마음이 몰랑몰랑해지는 감성 독립서점을 만났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취향저격하는 출입문이 레트로한 감성을 뿜뿜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내부 모습은 어떨지 들어가기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대학로에서 만난 작은 독립서점이 즐겁기만 했던 학창 시절과 저의 리즈 시절을 소환시키며 행복한 추억에 젖어들게 만들었습니다.
1. 공간과 몰입의 최대 미스터리
서점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한쪽 벽을 채운 흰 커텐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담하고 앙증맞은 이 서점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인테리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커튼 뒤에서 명랑하고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안녕하세요! 공간과 몰입 책방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그것도 두 가지 버전의 목소리가 세상 달달한 목소리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궁금해 커튼 너머로 여쭈어보았습니다. "혹시 책방 주인이신가요?" 돌아오는 답은 두 분이 공간과 몰입 책방의 책방지기님들 이시고 매번 방문객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하는 것이 부끄럽고 쑥스러워 커튼 뒤에서 인사를 하시기 시작했다고 하십니다. 두 분의 책방지기님들께서 커튼 뒤에 숨어서(?) 손님을 맞이하시는 모습이 너무 기발하고도 귀여웠습니다. 그 발상이 너무 재미있어 쓸데없이 자꾸 커튼을 열고 책방지기님들께 이것저것 물어보는 실례를 끼쳐드렸습니다.
2. 책방지기님의 아이디어 팡팡 북
'아이폰 메모가 왜 좋은지 알았다. 따로 저장 버튼이 없다는 점. 저장할까 말까하는 헛소리들도 그대로 저장해 놓을 수 있다. (중략) 새벽 꿈결에 일어나서 방금 꾸던 꿈을 기록하기에도 편하다. 맥북으로 쓸 때 ctrl s를 강박적으로 누르지 않아도 된다. 이것도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 적음.' 책방지기님의 독립출판물 '아이폰 메모로 만든 책'입니다. 정말로 아이폰 메모기능을 활용하여 생각날 때마다 끄적거린 메모가 책이 되어 세상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폰 유저들이 흔히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의 기능을 백분 활용하여 일상의 기록들을 가감 없이 적어 내려 간 글들이 매우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결국 글쓰기란 큰 맘먹고 노트북 앞에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들을 자분자분 메모하고 기록한 것들의 집합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책방지기님의 번득이는 아이디어, 정말 멋지십니다!
3. 애린 왕자를 만나다
공간과 몰입 책방에서 책 한 권을 구입한다면 단연코 '애린 왕자'였습니다. 책제목이 이렇게 구수하고 유머러스할 수 있는지 헛웃음이 막 나올 지경입니다. 번역가 최현애씨가 독일어판 '어린 왕자'를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다시 번역한 출판물입니다. 나름 4쇄까지 발행할 만큼 입소문이 난 책이었고, 전라도 버전도 있다는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번졌습니다. 경상도 사투리 교본으로 여겨질 만큼 한 번 읽고 나며 경상도 사투리에 능통해질 수 있다고 하니 제2모국어가 필요하신 분들께는 강추해 드리겠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몇 구절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 그라믄 됐다."
나는 양이 작은 풀뭉티 묵는다는 기 와 중요한지 몰랐는데, 애린 왕자가 구카데.
"그라믄 양들은 바오밥나무도 묵겠네?"
나는 애린 왕자테, 바오밥나무는 작은 풀뭉티가 아니라 교회 건물 맹키로 큰 나무고 코끼리 한 부대를 델꼬가 도 바오밥나무 하나 다 못 뜯아 묵을끼라켓지.
책방을 들어가며 그리고 책방을 나오며 얼굴에는 온통 미소가 번졌습니다. 나를 미소 짓게 만들고 행복에 젖게하는 참 좋은 책방이었습니다. 달달한 두 분의 책방지기님이 열심히 가꾸어 나가시는 '공간과 몰입'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삼십 년 후, 대학로를 기억하며 웃음 지을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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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몰입 ·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산길 19 1층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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