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품이 좋으면 다른 작품도 다시 찾아 읽기 마련입니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읽고 난 후 그녀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기도 한 작품으로 역대 부커상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21쪽의 얇은 작품이지만 소설이 주는 메시지와 울림은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 명작이었습니다. 아일랜드의 가톨릭 수녀원에서 운영 중이었던 '막달레나 세탁소'에 벌어진 잔혹행위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실제 아일랜드 엔다 케니 총리는 이 문제에 대해 2013년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잔잔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속에서도 강렬하고 진한 감동이 전해지는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다섯 가지 관점에서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아일랜드의 추운 겨울
이야기는 1985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암울하고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전개됩니다. 작은 마을은 크리스마스 시즌임에도 온통 차가운 분위기를 띄고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눈으로 뒤덮인 얼어붙은 거리는 주민들이 겪는 숨겨진 고통과 긴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혹독한 겨울은 주인공 빌 펄롱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감정적 고난과 도덕적 고뇌를 보여주고 있는 은유적 도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2. 빌 펄롱의 인생
주인공 빌 펄롱은 그의 작은 마을 공동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성실한 석탄, 목재 상인입니다. 부유한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주인의 배려와 도움으로 제한적이기는 했으나 어렵지 않은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정직함과 친절함이 몸에 배인 인물로,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에게는 헌신적인 남편이자 사랑하는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석탄과 목재를 마을 사람들에게 배달하며 펄롱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특히 어머니를 고용했던 부유한 가정으로부터 받았던 지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소박하지만 펄롱은 가족의 사랑과 따뜻함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펄롱의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에 대한 반성은 앞으로 그가 마주하게 될 불의 앞에서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그를 단단히 지탱해 줍니다.
3. 수녀원의 비밀
지역 수녀원에 정기적으로 배달을 하던 펄롱은 수녀원에서 불편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며 그곳의 어두운 비밀을 엿보게 됩니다. 다양한 이유로 수녀원에 보내진 여성들과 소녀들이 감금 상태로 열악한 노동현장에 놓여져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석탄 창고에 갇혀 떨고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하게 되자, 펄롱은 수녀원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것은 그동안 마을에 떠돌던 소문이 진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으며, 교회와 마을 공동체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학대와 착취의 현장이 그의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펄롱은 이 사실을 깨닫고 도덕적인 결단과 수녀원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4. 도덕적 갈림길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한 펄롱은 자신의 생계와 가족을 보호해야 하는 것과 자신이 목격한 불의에 맞서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수녀원이 마을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는 것은 무고한 이들이 계속 고통을 당하는 것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펄롱은 괴로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펄롱은 양쪽 사이에서 선택의 위험과 결과를 저울질하며 힘겹게 양심과의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5. 자비의 행동
결국 펄롱은 예측되는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자비와 용기를 가지고 불의에 맞서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창고에서 발견한 어린 소녀를 도와주기로 결정하고, 그녀를 당당하게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와 집으로 데려갑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수녀원에서 감행되고 있던 학대와 착취를 세상 밖으로 폭로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위로 펄롱은 도덕성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익이나 안전보다 고통당하는 타인의 안위를 우선시하게 됩니다. 펄롱의 행동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며 마을 공동체가 정의와 변화의 길로 나아가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불의에 맞서고자 하는 그의 용감한 결단은 많은 고통과 고뇌가 요구되었지만 개인의 행동이 결국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소설의 핵심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음울함과 차가움은 결말에 이르면서 희망과 따뜻함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해주며,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숨겨진 영웅들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할 시간을 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