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강렬함이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집어 들게 된, 작가가 누군지도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책장을 펼쳤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 또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었구나!'였습니다. 옳다고 생각했던 나의 의견과 판단들, 나의 따뜻한 말과 행동이라고 착각했던 잘못된 배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유영했습니다. 열다섯의 나이에 시력 이상을 판정받고, 십 년 후에는 완전히 시력을 잃을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던 작가의 삶, 하지만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삶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하루하루를 꾹꾹 눌러내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작가, 조승리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시청하다 자신을 낳으신 어머니께서는 그녀에게 '승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하고 멋진 이름을 뒤로 하고 그녀는 열다섯에 시각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십 년 후에는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됨을 의사에게 듣게 됩니다. 그것도 혼자 방문한 병원에서 얻게 된 진단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한 일은 오로지 책 읽기였습니다. 시력이 남아 있는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책을 읽는 어린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딸의 장애를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던 어머니, 딸의 장애가 죽을 때까지 부끄러워 남 앞에 나서지 못했던 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했지만 결국 어머님의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녀는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에서 자신의 울분과 희망, 그리고 바램들을 가감 없이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진정 어린 호소와 마음을 울리는 에피소드들이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
작가는 자신의 가난하고 불행했던 삶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이 시릴만큼 아프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골마을에서 보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고등학교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며 온갖 불의와 맞서 싸웠던 일, 마사지숍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감동적인 일화들은 어느 소설 못지않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복지관에서 주관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여행프로그램에 비장애인 안내인을 반드시 동행해야만 하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안내인을 찾지 못해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그토록 바라던 여행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 속에 꿈꿔 왔던 탱고를 배우고, 시각장애인 세 명이 대만 여행을 계획하여 또 그걸 멋지게 해내는 그녀의 모습에 벅찬 감동과 큰 응원을 소리 없이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가르친 인생 한 자락
제가 조승리 작가를 만난다면 쉽게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당신을 보니 사지육신 멀쩡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지네요! 앞을 못 보는 당신도 이렇게 열심히 인생을 살아내는 데 제가 감사함을 잊고 살았나봐요." 라고... 그러나 이런 생각이 너무나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것을 그녀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장애인을 이 땅에 만드셨는지 아시나요? 그건 여러분께 현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해드리려는 주님의 안배입니다. 저들을 바라보며 건강한 육신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아시길 바랍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날을 치욕을 잊지 못한다. 어느새 들이닥친 죄책감이 발목까지 고여 들었다."
장애인을 돕는 활동지원사, 수미씨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그녀의 대답이 마음속 깊이 와닿았습니다.
나는 불행을 잊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수미씨는 장애가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눈이 먼 게 불행한 게 아니라 이 상태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말했다.
제목처럼 강렬한 삶의 주인공, 조승리 작가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리뷰였습니다. 삶과 맞닿아 있는 내용들뿐만 아니라 편안한 문체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전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졸렬한 생각을 반성하게 했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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