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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광기 어린 예술혼 그리고 고갱의 그림자

by aromaLee 2025.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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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고전에 도전해 보자며 선택한 책,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익숙한 도서명이지만 어쩐지 책이름이 너무 직관적이어서 선뜻 집어 들지 않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다행히 독서모임을 통해 반 강제 형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줄 평을 하자면 '지금 느낀 두근거림이 없어질까 봐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점점 갈수록 격화되는 내용 전개와 결말이 모든 독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소설이었습니다. 

 

고갱을 닮은 스트릭랜드의 광기 

서머싯 몸은 실제 인물이었던 화가, 폴 고갱의 삶에 영감을 얻어 탄생한 소설입니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평범한 증권 중개인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자식, 안정된 직장을 모두 버리고 화가가 되겠다면 파리로 떠나게 됩니다. 스트릭랜드 부인의 청에 못이겨 소설 속 화자 (   )는 예고 없이 사라진 그를 찾기 위해 런던에서 파리까지 쫓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    )는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변화를 목격합니다. 제대로 된 수입도 없이 허름한 방에서 가난하게 살며, 오직 그림에만 몰두합니다. 끼니도 거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으며, 기본적인 위생이나 인간관계도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었던 (   )의 부인 (    )를 가로채는(?) 등 알 수 없는 기행과 부도덕한 행동들을 보이게 됩니다.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병 앞에서도 그는 초연합니다. 병을 치료할 생각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림에 대한 자신의 열정 외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인간과 세상과 단절한 그러나 광기 어린 예술을 집착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때로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합니다. 
 

문명을 넘어선 낙원, 타히티에서 다시 태어난 예술가

소설의 후반부에서 스트릭랜드는 문명 세계를 떠나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갑니다. 그곳은 그가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본능에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습니다. 그는 타히티의 자연, 단순한 삶, 그리고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이런 풍경들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화가 폴 고갱을 떠올리게 됩니다. 고갱도 유럽을 떠나 타히티로 가서 많은 그림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이 항상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외로움, 가난, 병과 싸우면서도 그는 오직 예술을 위해 살았습니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하고, 그가 남긴 벽화는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깊은 예술로 남습니다. 그는 죽은 뒤에야 세상에서 인정받게 되는데, 이는 고갱이 생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사실과도 비슷합니다. 이 소설 속에서 타히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자유롭고 본능적인 삶이 가능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달과 6펜스?

사실 '달과 6펜스'는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저에겐 다소 식상하고 매력없는 책제목으로 느껴져 방치하고 있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완전히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달과 6펜스'라는 책제목마저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삶을 가장 집약적으로 압축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의 안정과 물질적 가치를 대변하는 6펜스를 과감히 버리고 스트릭랜드는 이상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위해 달을 쫓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특히 나병을 앓으며 시력을 완전히 잃어가면서 완성한 벽화는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깊은 예술로 남습니다. 그는 죽은 뒤에야 세상에서 인정받게 되는데, 이는 고갱이 생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사실과도 비슷합니다.
 

고갱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철들면서부터 반 고흐를 무지하게 좋아했습니다. 그와 동생 테오가 나눈 편지글부터 그의 그림까지 고흐의 인생전부를 사랑하게 된 광팬이었습니다. 프랑스 아를 지방에서 고흐와 고갱은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강렬한 스토리를 만들게 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화풍을 가졌던 고흐와 달리 고갱은 이성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성격과 예술관이 달랐던 두 화가는 심한 말다툼을 벌이게 되고 그 여파로 고갱은 고흐를 떠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게 된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이상한 행동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고갱에 대해 무지했던 저는 그냥 고갱이 미웠습니다. 정서적으로 유약했던 고흐를 이해하지 못하고 야멸차게 떠나버린 고갱이 밉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고갱의 예술에 열정과 순수한 광기를 보게 되었고 고갱을 재평가하는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트릭랜드의 삶은 우리가 흔히 바라는 '성공'이나 '행복'의 정의를 무차별하게 뒤집어 놓았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그림에 매달렸던 스트릭랜드에게 인간적인 존경과 경외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나도 모르게 고갱의 그림 한 장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스트릭랜드가 죽음 앞에서도 놓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했던 벽화,,, 그러나 스트릭랜드가 죽자마자 어린 부인에게 태워 버리라고 했던 그 벽화,,, 소설 속 이야기지만 계속 그 벽화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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