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광고, 포카리스웨트! 파란 지중해와 함께 어우러진 하얀색, 파란색 건축물의 절묘한 조화는 산토리니에 대한 환상을 맘껏 품게 만들었습니다. 터키 여행을 끝내고 배편으로 산토리니를 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보드룸, 페티예, 쿠사다시 어느 곳에서도 산토리니로 가는 배편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결국 아테네에 들러 산토리니로 가는 비행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산토리니로 고고!!!


늦은 도착으로 호텔 찾아 삼만리
산토리니 티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서둘러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택시 운전사분께서 10시반이면 공항의 모든 대중교통이 끊어진다며 서둘러 택시에 탈 것을 종용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30여분을 달려 호텔이 있는 피라마을까지 가게 됐고, 기사님께서는 높은 언덕 아래에 택시를 세우며, 걸어서 조금만 올라가면 호텔이 나온다고 아주 확신에 차서 말씀하셨죠! 겨울이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만만치 않았고 저는 동행과 함께 제 키만 한 배낭을 메고 힘겹게 언덕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구글맵으로 호텔을 찾았지만 계속 같은 자리만 빙빙 돌며 도대체 호텔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라고는 개미 한 마리 없었고, 가끔 보이는 호텔 간판에도 불이 켜져 있는 방은 거의 없었습니다. 동행과 헤어져 호텔을 찾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것도 미로같이 생긴 피라마을에서 호텔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아,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산토리니가 나를 이렇게 배신한다고??? 한 시간여를 헤맨 끝에 동행이 저 멀리서 외쳤습니다. "찾았어, 여기야!!!"

에라, 모르겠다!
제가 찾던 호텔 'On the Cliff'! 간판이라고는 제 손바닥보다 조금 더 컸습니다. 아니 이걸 보고 우찌 찾아오라는 건지!!! 하지만, 호텔을 찾는 과정은 앞으로 벌어질 어마무시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산토리니의 유명한 관광지인 이아마을과 피라마을은 산비탈 같은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저희 호텔도 비탈진 경사에 2층부터 5층까지 야외 객실이 있었습니다. 일단 체크인을 해야 했기에 프런트 데스크를 찾으려 했지만 객실과 식당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층부터 5층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포오기...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거지??? 호텔 찾는 데 한 시간, 프런트 데스크 찾는 데 한 시간... 더 이상 무언가를 시도할 힘이 없었습니다. 산토리니까지 와서 노숙을 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무 데나 열려 있는 객실에서 일단 하루를 보낼 요량으로 불 꺼진 객실 문을 하나씩 두드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문을 열고, 음... 괜찮네! 다음 문도 열어 볼까? 으악!!!!!!!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오며 속사포 같은 욕설이 들려왔습니다. 물론 영어입니다! 문밖에서 멀리 떨어져 문을 향해 두 손을 싹싹 빌며 '아임 쏘리'를 연발했습니다. 어쩔 도리 없이 첫번째 빈 객실에 들어가 조용히 몸만 뉘었습니다. 난방도 안되고 전기도 안 되고, 아,,,,,, 산토리나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결국, 울음까지 터트린 나란 사람
아침이 밝자마자 3층 식당으로 달려갔습니다. 지배인쯤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분을 붙잡고 어젯밤 제가 겪은 비운에 대해 속사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영어로 이렇게 욕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름 뿌듯함도 hahaha~~~ 컴플레인을 하다 보니 어제의 제 처지가 너무 불쌍해지면서 눈물이 뚝뚝,,,, 그러나 제 얘기를 다 듣고 난 직원께서 하시는 말씀, "저는 웨이터입니다. 매니저분은 아직 출근전이십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셔서 지중해 바다를 한 번 감상해 보세요!" 이뤈... 쪽팔림도 잠시! 눈을 돌려 통창으로 보이는 지중해를 보던 저는 다시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당했던 불편함과 비참함을 쏟아낼 생각만으로 밤을 지새운 탓에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지중해를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었습니다. 찬란한 해가 그 파아란 지중해 바다에 스며드는 모습은 이제껏 제가 본 바다 중에 단연코 최고의 바다였습니다. 조식으로 나온 아침식사는 어찌 또 그리 정성스럽고 정갈한지요. 그릭 샐러드, 그릭 요거트 등등 정말 대접받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맛있는 조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와 정성스러운 조식으로 저의 화는 눈 녹듯 녹아내렸고 정작 지배인이 왔을 때 저는 누구보다 순한 양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배인은 고생한 저를 위해 4박 5일 객실을 업그레이드해 주시고 1박은 무료에 거기다 그리스 관광세(20유로)까지 면제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무디 베이 비치, 동키 라이딩
제가 머물었던 피라 마을 숙소가 동키 라이딩으로 유명한 아무디 베이 비치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비치 쪽으로 연결된 돌로 된 계단이 어찌나 예쁘던지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했습니다. 하루는 맘 잡고 돌계단을 돌아 돌아 아무디 베이 비치까지 가 보았습니다. 화산 지형으로 만들어진 동굴절벽도 있고 제법 큰 선착장도 있어 가까운 섬투어도 가능했습니다. 돌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세상 순해 보이는 당나귀와 마부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체 없이 올라탔습니다.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가파른 돌계단을 당나귀와 함께 오르는 기분은 또 다른 산토리니의 재미가 되었습니다.


렌트카로 산토리니 일주, 레드비치, 블랙비치(카마리비치)
산토리니에 가면 보통 이아마을과 피라마을 외에도 가 볼 만한 관광지가 꽤 많습니다. 물론 그 두 곳만 방문해도 산토리니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만 저는 산토리니의 대표 해변인 레드비치를 강추합니다. 레드비치는 깎아지른 듯한 붉은 절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해변입니다. 그랜드 캐년에서나 볼 법한 어마무시한 절벽의 단층들이 지구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레드비치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여성이 블랙비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함께 동행했습니다. 다소 험한 길을 따라 올라가니 블랙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곳이 있었습니다. 어떤 안전장치도 없어서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절벽 너머로 보이는 검은 해변과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산토리니의 숨은 명소입니다.



한 가지 더!
산토리니는 화산지형입니다. 칼데라 지형이 품는 토양에 지중해의 온화한 바닷바람과 햇빛 덕분에 포도주가 유명합니다. 특히 가격은 좀 비싸지만 산토리니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빈산토 와인이 있습니다. 산토리니 와인의 역사가 3,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니 믿고 마시는 와인일 수밖에요! 와이너리 투어도 많으니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저희는 산토리니 와인 뮤지엄을 방문했습니다!

그리스 여행에 산토리니는 선택이 아닌 필수 방문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지중해 뷰와 하얀 건축물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할 산토리니, 강추드립니다.
'세계일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주 멜버른 카페 추천, 간판 없는 커피숍 Patricia Coffee Brewers (11) | 2025.03.28 |
---|---|
마운트 쿡(Mt. Cook) 트레킹과 타스만(Tasman) 빙하 투어 (6) | 2025.03.10 |
시드니 본다이 비치 ‘허리케인 그릴’ 솔직 후기 (8) | 2025.01.23 |
베로나, 이탈리아의 숨겨진 보석같은 도시 (6) | 2025.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