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읽고 싶은 목록에 있었던 책입니다. 너무 베스트셀러여서 애써 외면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퇴직을 앞둔 선배 동료가 이 책만큼은 몇 번이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말에 못 이긴 척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있었기에 솔직히 큰 기대 없이 읽어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한 번 와~ 하고 읽어버리고 말 책이 아니었습니다. 심심치 않게 들려왔던 아들러(Alfred Adler)라는 심리학자의 이론과 주장에 대해 조금 파악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들러의 사상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아들러 심리학의 대가인 철학가 기시미 이치로와 프리랜서 고가 후미다케의 대화식으로 펼쳐진 심리학서이면서 동시에 철학서입니다. '넌 할 수 있어! 다시 시작해 보자!'라는 식의 동기부여를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자기 계발서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잘못 살아왔던 인생에 처방전을 주고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 같은 책이었습니다.
1. 기시미 이치로는 누구인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아들러의 아이디어를 해석하고 대중화한 유명한 일본의 철학자이자 작가입니다. 1956년 교토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교토에 살고 있는 기시미는 서양고대철학을 전공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아들러의 심리학을 연구하며 개인의 심리, 개인적 발전, 그리고 사회적 소속감에 초점을 맞춘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광범위하게 글을 썼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코가 후미타케와 함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공동으로 집필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복잡한 심리학적 개념들을 더 많은 청중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생각들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2. 프로이드의 '원인론'에 정면으로 맞선 아들러의 '목적론'
우리는 어떤 실수나 패배 혹은 회피에 대하여 가볍게 '트라우마'를 들먹거리게 됩니다. 기시미는 '트라우마'에 대해 정면으로 맞섭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인간을 기계처럼 바라보는 결정론이며 허무주의에 불과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기시미는 정통적인 심리학의 인과법칙을 근본부터 뒤집는 개념인 '목적론'을 제창하고 있습니다. 말과 글로는 이해 안 되는 개념을 기시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며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화가 나서 큰소리를 낸 것이 아니라 큰 소리를 내기 위해 화를 낸 것이지. 큰소리를 내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분노와 감정을 지어낸 걸세.
고가 후미다케가 자신의 옷에 커피를 쏟은 점원에 큰 소리로 화를 낸 것을 듣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꽤 설득력 있는 예시여서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화내고 짜증 내면서 항상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변명 아닌 변명이 상대에게 거부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더 분노하게 됩니다. 프로이드의 원인론, 다시 말해 트라우마이론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3. 용기의 심리학
흔히 아들러의 심리학을 용기의 심리학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많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들러는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기시미는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용기가 없어서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 일쑤입니다.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4. 미움받을 용기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
기시미는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자유'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의 자유에 대한 정의가 매우 신박합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며 스스로의 의지와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라고 강변합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며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므로 내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의 정곡을 찌르는 말 같아 매우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남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신경 쓰며 나를 잃어버리는 삶을 살고 있던 저의 모습을 콕 집어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기시미는 이렇게 과제 분리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모든 인간관계의 카드를 자신이 쥐게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실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아주 작은 일에 온 에너지와 힘을 쏟으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기시미는 이러한 상황을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잘못된 생활양식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은 '공헌감'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합니다. 특히 '타자공헌'에 대해 강조하는 데 이것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주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이것이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지침이며, 인생의 '길잡이별'이 되어 이 방향으로 쭉 가다 보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절대적 이상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 자신을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개인의 자유와 자기수용 그리고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용기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 책이었습니다.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함으로써 모든 인간관계의 카드를 자신이 갖게 될 수 있다고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며 타인과 비교하기보다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만들고 그것만 바라보며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삶에서 절대 길을 잃지 않도록 든든한 나침반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는 없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아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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