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론'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숙론'은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을 뜻합니다. 대한민국이 전쟁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지만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남다른 교육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육 때문에 우리 사회가 무너져 내려가고 있음을 묵과할 수 없었던 최재천교수는 우리나라를 일으킬 새로운 교육방법으로 '숙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이신 최재천교수의 신간 '숙론'을 통하여 숙론의 올바른 의미와 그것이 왜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숙론이란?
우리 사회에 민감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미디어에서는 '토론'을 빙자한 격렬한 말싸움터를 벌여놓고 우리에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토론이란 상대의 의견을 뭉개고 박살 내어 내 의견이 옳고 당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만드는 치졸한 말싸움이었습니다. 최재천교수는 이러한 우리의 성향을 '백지연의 끝장토론'이라는 프로그램명을 예시로 들며 제목부터 자기모순적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토론은 끝장을 보려 도모하는 행위가 아니다. 기어코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결기로 충만해 토론에 임하면 남의 혜안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이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식 수준을 공유 혹은 향상하려 노력하는 작업이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 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What is right?'를 찾는 과정이다.
2. 우리 시대 '숙론'의 필요성
최재천교수는 '통섭'의 개념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학자로 유명합니다.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제돌이 야생방류 시민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노인복지포럼 자문위원회, 코로나 19 일상회복 지원위원회,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 위원회 등 수많은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신 최재천교수가 숙론의 과정을 통해 결실을 맺었던 위원회 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관공 위원회는 정해져 있는 틀에 맞추어 어쩌면 정해져 있는 해답을 도출해가는 과정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시민의 편리와 안전 그리고 복지보다는 행정적 편의가 우선시되고 관료들이 기획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전문가를 초청해 회의 몇 차례 한 다음 사업을 공표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실제 우리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진심어린 국가의 정책들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오죽하면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미국에서 경험했던 숙론의 장을 모든 위원회에 가져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시민과 단체의 대표들이 마주 앉아야 한다'라는 철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결과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덜 낭비할 수 있다는 지론입니다. 그러면서 '숙론'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단체로 대한민국 '국회'를 꼽았습니다.
3. 우리 교육에의 적용
교육 전문가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교육 개혁 수준이 아니라 교육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입을 맞춰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이 단연코 교육으로 흥한 나라이지만 이제 그 교육 때문에 개인과 가족이 불행해지고 사회 전체가 갈등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는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상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아직 개발도상국의 교육제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최재천교수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라는 거푸집을 거쳐 나오면 잘 깎여 한데 묶인 연필 자루들이 된다'며 창의성과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의 교육 현실을 꼬집고 있습니다.
-암기보다 질문
인류의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 질문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최재천교수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질문에는 순진한 질문, 지루한 질문, 부적절하게 들리는 질문, 지나치게 자기비판을 앞세운 질문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진짜 멍청한 질문은 묻지 않은 질문이다.(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
-읽기, 쓰기, 말하기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는 리더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더불어, 문자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로써 '말하기' 못지않게 '글쓰기' 역시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갈래마다 그 끝에 결국 '글쓰기'가 자리하고 있음을 소개하며 '글쓰기'가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 예시를 들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기'와 '글쓰기'의 가장 훌륭한 자료가 읽기임을 강조하며 빡센 독서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손잡아야 살아남는다
최재천 교수는 '경협(競協)'의 개념을 연구하고 가르쳐 왔습니다. 경협(coopetition)이란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입니다. 경쟁에서 이기기위해 손잡고 돕는 것입니다. 참으로 탁월한 개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의 모든 장면 장면마다 마주해야 하는 인정머리 없는 '경쟁'의 특성을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용어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최재천 교수의 다음 글은 경협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아보니 이 세상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짓밟고 제거하며 올라서는 게 아니라 그들과 돕고 사는 가운데 내가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려면 그들이 잠잘 때 나는 일어나 조금 더 일하고, 그들이 휴식을 취할 때 나는 조금 더 노력해서 한 발짝이라도 앞서 나가는 것임을 터득했습니다."
최재천교수의 숙론은 대한민국에 고하는 우리 시대 지식인의 진정 어린 충고였습니다. 우리의 눈부신 발전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진일보하기 위해서 '숙론'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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